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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체육선생님 정체 누구 김영광 축구선수 키 나이 프로필 연봉

ㅁㄴㅇㄹhh 2024. 6. 10. 15:13

서강준 절친=김영광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수다 메이트
-2024. 6. 9

전 축구선수 김영광의 절친으로 서강준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9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는 9연승 가왕 '희로애락도 락이다'를 꺾은 신입 가왕 '헤라클레스'를 상대할 8인의 복면 가수가 출격했답니다.

이날 1라운드 두 번째 대결에는 체육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이 출연해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으로 대결을 펼쳤다.  


연예인 판정단은 체육 선생님을 농구선수 이관희, 허웅 등으로 추측했고 쉽게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체육 선생님의 지인 힌트로 얼굴 천재 서강준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서강준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저의 수다 메이트다. 손이 굉장히 크다. 처음 봤을 때 저 손으로 맞으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놨다 했던 분이다. 김종국, 전현무, 손흥민까지 다양한 인맥을 가진 대한민국의 큰손이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최종 음악 선생님의 승리 체육 선생님의 정체가 공개됐다. 체육 선생님의 정체는 은퇴한 지 6개월 된 전 축구선수 김영광이었다.

김영광은 "김병지 형님의 기록을 이기고 은퇴하고 싶었지만 깨려면 3년을 쉬지 않고 뛰어야 했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과감하게 박수칠 때 떠났다"며 은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골키퍼로서 졌는데도 행복한 경기가 있었다. 친선전으로 내한한 손흥민이 락커룸으로 찾아와서 싸인을 해줬다. 가보로 잘 간직하고 있다. 딸들이 입고 나가고 싶다고 정말로 난리가 나서 한 번씩만 입고 갔다오라고 했다"며 손흥민과의 일화를 전했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방송계에 자리 잡은 스포츠 스타들 안정환, 강호동, 서장훈과 같이 그 계보를 꼭 이어가고 싶다. 좋은 기운 받고 제2의 인생 살아가겠다"며 앞으로의 다짐을 밝혔다. 

K리그 605경기 후 '은퇴 선언' 김영광 "제2의 인생, 이 길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2024. 4. 27.

 K리그의 큰 별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 1월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김영광이 22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는 다양한 방송활동을 예고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영광을 마주했다. 은퇴를 발표하고 그 다음날부터 운동을 안 해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지만, 피지컬은 여전했다. 그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지난날을 돌아보았답니다.

현재 근황은?
은퇴를 선언하고 방송유망주로서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다. 섭외되는 대로 나가고 있다. 일단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30년 동안 한 축구 인생이 끝났다. 이제는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마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백지 상태라는 마음으로 부딪혀보고 있다.

은퇴를 선언한 계기는?
사실 1년을 더 하자고 하는 팀이 4~5개 있었다. 항상 목표를 설정하고 축구를 했는데 마지막 목표가 (김)병지 형님의 최다 출전 기록(706경기)을 깨는 것이었다. 병지 형님도 그 기록을 깨라고 하셨다. 근데 계산을 해보니깐 3년을 모든 경기에 나가야 깰 수 있는 숫자였다. 1년만 더 하면 640경기 정도 되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목표 의식이 떨어지다 보니, 팀에 들어 동계훈련을 갔을 때 과연 100%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 수는 있다. 설렁설렁 할 수 있었을 거다. 근데 그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다. 100%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하는 게 낫겠다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후회는 없나?
후회는 없다. 그만 두기 직전까지 100%, 200%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나?
그래도 좀 더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이야기 하며 후회 없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라고 했던 팀들에 이제 막 경기를 나가려고 하는 좋아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굳이 그 자리에 가서 후배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런 부분이 컸다. 그런 팀들을 제외하니 한 팀이 남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김영광은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지만, 첫 시즌에는 단 한 차례도 기회를 받지 못했다. 당시 팀에는 박종문 골키퍼가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1년 동안 0경기 출전으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새 시즌 더욱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기회는 없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하루 4번(새벽-오전-오후-저녁)의 훈련을 매일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데뷔전의 기회가 찾아왔답니다.

데뷔전까지 과정 기억나나?
당연히 기억난다.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긴장되어서 전날 밤 베란다에서 줄넘기를 했다. 너무나 힘들게 온 기회여서 많이 떨렸다. 그땐 22세 룰도 없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 경기를 못 나간 1년 반 동안 하루 4번 운동을 했는데, 기회가 안 오니 3번만 할까도 했다. 근데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너무 찝찝하더라.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나가서 운동했던 기억이 난다. 키가 작으니깐 다른 선수보다 빠르고 높게 점프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발력과 점프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답니다.

2006시즌을 마치고 울산으로 이적했다. 당시 이적료가 22억 원으로 파격적이었다. 이적료에 울산 외국인 선수 레안드롱이 전남으로 이적하는 것까지 포함된 거래였다. 울산 유니폼을 입은 김영광은 펄펄 날았고 2013년까지 231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어떻게 이적하게 되었나?
당시 울산이 골키퍼를 많이 원했었다. 그리고 울산 수석 코치님이 청소년 대표 월반했을 때 지도해 주셨던 코치님이었다. 그리고 울산 골키퍼 코치님이 제 나이 때 청소년 대표팀 할 때 코치님이셨다. 다 좋게 봐주셔서 울산으로 갈 수 있었답니다.

이적료가 화제였는데?
사람들이 22억을 내가 받은 걸로 안다. 그건 이적료라 내가 받은 건 하나도 없다. 이적료가 워낙 셌기 때문에 연봉은 크게 안 올랐다. 잘 하면 인상된다는 조건이었는데, 가자마자 컵대회도 우승하고 잘 해서 나중에 많이 인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