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부친의 총격과 관련해 "돌아가신 엄마가 아빠를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이방카는 현지 시간 14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2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지난 밤 엄마가 아빠를 지켜준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매일 엄마를 그리워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고 덧붙였던 것입니다.
2년 전 7월 14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 이바나 트럼프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은 현지 시간 13일 발생했습니다.
이날 오후 6시 3분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현장에서 오른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린 순간 총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한 겁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격 사건 하루 만인 14일 오후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도착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어제의 끔찍한 일로 인해 내 위스콘신 방문과 공화당 전당대회 일정을 이틀 연기하려 했으나 나는 '총격범' 또는 암살 용의자가 일정표나 다른 어떤 것을 강제로 바꾸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레드 쿠시너 백악관 수석 고문 | '트럼프 정권 실세' 러시아 커넥션으로 위기 억만장자 상속자에서 '권력 폭풍' 뇌관 부상 -2017. 6. 6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 자레드 쿠시너(Jared Kushner·36) 백악관 수석 고문이 ‘러시아 커넥션’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 26일 “쿠시너가 지난해 말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극비 회동, 미국과 러시아의 비밀 채널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말로 최소 세 명의 관리로부터 쿠시너가 키슬랴크 대사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며 “만약 미국 첩보원이었다면 반역죄로 처벌받았을 것”이란 존 맥라클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대행의 코멘트를 소개했다. 로이터통신은 5월 27일 “쿠시너가 2016년 4월부터 1년간 두 번의 전화 통화를 포함, 최소 세 차례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쿠시너를 해임하라”며 트큼직막럼프를 압박하고 있다.
쿠시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이던 2016년 12월 세르게이 고르코프 브네시코놈뱅크(VEB) 회장,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만나고도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브네시코놈뱅크는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국영은행이다. “외교 행사에서 잠시 만난 것일 뿐”(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부동산 투자를 정말로 논의했다”(고르코프 회장)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랍니다.
백악관 수석 고문, 대통령 직속 미국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쿠시너가 트럼프 정권의 인사·정책·정보를 쥐고 있다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지명, 대통령직 초대 인수위원장이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인수위 축출, 심지어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도 쿠시너 작품이란 분석이 나온다.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의 전격 경질도 쿠시너의 입김이 작용한 ‘기획 작품’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1000억달러(약 113조원) 무기 거래 협상 당시 쿠시너가 록히드마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레이더 가격을 조금 낮춰달라’고 요청한 뒤 막혔던 거래가 뚫렸던 것이다”고 했답니다.
194㎝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의 쿠시너는 1981년 미국 뉴저지 리빙스턴에서 유대인 부동산 억만장자인 찰스 쿠시너와 셰릴 쿠시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친할아버지 조셉 쿠시너는 1949년 소련 벨라루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뉴욕에 정착했다.
정통 유대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쿠시너는 1999년 하버드대(행정학 전공)에 입학했다. 아들의 대학 입시를 한 해 앞둔 1998년 부친이 250만달러(약 28억원)를 하버드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돈을 주고 입학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가디언은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레드의 하버드 입학은 뉴저지에 2만5000개의 아파트, 사무실, 공장을 소유한 억만장자 아버지의 엄청난 기부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쿠시너는 2007년 뉴욕대에서 법학박사(J.D)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고 뉴욕 검찰청에서 잠시 인턴 생활을 했습니다.
쿠시너는 대학 재학 중에 부친 등의 도움을 받아 매사추세츠주 빌딩에 투자해 2000만달러(약 226억원) 이익을 냈고, 이 돈으로 2006년 ‘뉴욕 옵서버’를 1000만달러(약 113억원)에 인수했다.
옛 소련계 부동산 억만장자 출신
당시 뉴욕 옵서버 편집장 피터 카플란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애(guy)가 회사를 샀다”며 회사를 떠났다. 쿠시너가 인수한 뉴욕 옵서버는 “경쟁 부동산 회사를 공격하는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쿠시너는 올 초 백악관 수석고문으로 부임할 때까지 발행인 자리를 지켰다.
2004년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 찰스 쿠시너가 탈세, 불법 기부 혐의 등으로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는 등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찰스 쿠시너는 매춘부를 고용한 뒤 자신의 불법 행위를 증언하려는 매형에게 접근시켜 비디오를 촬영해 이를 누이에게 보낸 혐의(증언 조작)도 받았다. 2006년에는 그의 삼촌도 수사를 받고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7년에는 뉴욕 맨해튼 5번가 666번지, ‘티시먼 빌딩’을 18억달러(약 2조원)에 구입했다가 금융 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었다. 일부 지분을 10억달러에 매각,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90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2014년 뉴욕과 볼티모어에서 1만1000개 이상의 사무실과 아파트를 구입하고, 2015년 5월 ‘광고 빌딩’으로 유명한 뉴욕 타임스퀘어 지분 51%를 2억9500만달러(약 3300억원)에 구입했다. ‘헤지펀드의 황제’ 조지 소로스와 골드만삭스 등 유대인 자본이 자금을 댔다.
평생 민주당원이었지만 선거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쿠시너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진영의 디지털과 소셜미디어 선거전을 지휘했다. 실리콘밸리의 인재 100명을 스카우트, ‘알라모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트럼프를 외면한 주류 미디어 대신 유권자들을 직접 공략했다.
운 좋은, 억만장자 상속자에 불과(?)했던 쿠시너가 거대한 권력 폭풍의 한가운데로 간 계기는 트럼프의 딸 이반카 트럼프(36)와의 만남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공개 데이트를 하던 두 사람은 2008년 쿠시너 부모의 반대로 한때 결별을 선언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0월 결혼했습니다.